우연성
우연성
  • 조성연
  • 승인 2006.09.01 0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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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호는 살인을 고향으로 갔다. 가는 곳마다 검문이었다. 차를 몇 번씩 갈아탔다. 검문소가 있는 곳에서는 그곳을 피해서 걷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아슬아슬하게 고향에 도착한 시간은 늦은 밤이었다. 광호는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는 생각을 했지만 자수를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사람을 죽이고 ‘라스콜리니꼬프’처럼 되고 싶지는 않았다. 러시아의 감옥이 차갑고 냉혹하다고 한다면 광호가 어린 시절부터 겪어본 감옥은 생각하기조차 싫은 아주 비참함 그 자체였다. 그래서 그 곳에 다시 가고 싶지 않았다.

광호는 배가 고팠다. 어디든지 가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자 두려움이 다소 누그러들었다. 어차피 하루 이틀 더 산다고 좋아지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겁날 것이 없었다. 작부를 한번 만나보고 싶고 어머니도 만나보고 싶었다.

광호는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작부가 운영하는 술집으로 가기 위해서 택시를 탔다. 운전사는 위장한 광호를 알아보지 못했다. 작부의 술집 앞에서 내렸다. 작부가 장사를 하는 술집은 이제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곳으로 변한 번화가가 되었다.

장사도 잘 해서 작부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 광호는 피식 웃었다. 그렇게 돈만 알고 행동하더니, 그래 나보다는 성공했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가소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돈을 벌면 무엇 하는지 되묻고 싶기도 하고, 자기처럼 아무렇게나 산 것도 후회가 되기도 했다.

광호는 주위를 살폈다. 이제 꺼릴게 없었다. 우연성을 믿기로 했다. 위험이 닥치면 그것을 받아드리고 행동하면 된다. 지금까지 모든 것이 그렇게 우연성에 의해서 일어났다.

어려서부터 자기에게 일어났던 모든 사건들은 모두 우연성이다. 대추나무집 할아버지 사건, 학교 유리창을 파괴한 사건, 여배우 겁탈 사건, 빨간 벽돌사건, 도깨비와 노름판을 전전하면서 일어났던 많은 사건들 모두 우연성이다.

윤리선생님을 살해한 끔직한 사건도 그렇고, 악어와 그 아내를 잔인하게 죽인 사건들이 하나같이 우연성에 의해서 일어난 사건이다. 모든 것이 작부와의 그릇된 사랑 때문이다. 어머니 말씀을 듣지 않아서이고, 하나님을 부정해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당과 할머니가 말하는 살이 끼어서 이기도하다.

그러한 생각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며 희열과 후회가 교차했다. 내가 지금 잡히면 다시 살게 될지, 죽을지는 전적으로 우연성이 좌우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망서 릴 것이 없다. 죽을 것이면 죽을 것이고, 살 것이면 살 것이다. 그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예수의 말씀을 어머니는 광호에게 말했다. “무거운 짐을 진자들아 내게로 오라, 그리하면 너희의 짐을 벗고 편히 쉬게 하리라”는 말을 들려주었다. 그러나 짐을 내려놓지 않았다. 그래서 모든 행동이 우연성에 의해서 결정되었다. 걱정할 것이 없다. 이제라도 편히 쉬면 그만이다.

우연성이 나의 운명을 좌우할 것이다. 검문이 있으면 그대로 따르고 행동하면 된다. 체포가 되어도 나와는 관계가 없다. 단지 관계가 있다면 내가 그렇게 살다가 죽을 운명이다. 그리고 우연성이 지배할 것이다. 광호는 정상인들이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단계까지 치달았다.
바보가 아니면 미친 자가 되었다. ‘라스콜리니꼬프’를 신봉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선생님을 믿지 않은 것이 문제가 되었다. 소설은 소설이고 명작은 명작이다. 그것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자는 바보가 아니면 천재다.

모든 명작 소설의 주인공을 흉내내려면 수도 없이 죽어야 하고 다시 태어나야 한다. 광호는 미친 자가 아니면 천재다. 광호는 피식 웃었다. 아무렴은 어떤가, 우연성이 하는 대로 따라하면 된다. 그런 생가까지 미치자, 정정당당하게 작부의 술집으로 들어갔다.

제일 먼저 놀랜 사람은 작부였다. 반갑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다 작부는 그런 상태에서 광호에 대해 어떻게 할지를 생각했다. 순간적으로 광호가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태연 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어머, 오랜 간만이잖아?”
“그래 오래 간만이냐, 어디 조용한 방 하나 주어,”
“그래야지, 따라와,”
작부는 호들갑을 떨면서 신속하게 광호를 밀실로 밀어 넣고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광호는 불안해하지 않았다. 신고를 할 테면 하라는 식이었다. 신고를 하면 우연성이 결정하는 데로 행동하면 된다. 그 우연성은 여러 가지 상황을 만들 수 있다. 작부의 공든 탑을 불사를 수도 있고 또 다른 자가 죽을지도 모른다. 그런 것을 작부가 모를 이가 없다. 신고할 테면 신고하라는 것이다. 그 때 상황에 따라서 행동하면 된다.

광호는 그런 우연성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얼마 후에 작부가 편한 복장으로 다시 나타났다. 그리고 편안하게 마음을 가지라고 말했다. 광호는 피식 웃었다

“편안하게, 살인자가 안심이 되나,”
“그래도 왔으니까, 편하게 마셔, 이곳은 안전해,”
“그래, 마시고 죽지,”
작부는 광호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감회가 교차되어서 여러 가지를 물었다. 하지만 광호는 그냥 아무 말도 묻지 말고 술이나 한잔하자는 말을 했다. 작부와 광호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술을 마셨다.

이제 그들은 어린 시절로 돌아갔다. 그 시절이 좋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자기와 밀애를 즐겼던 이야기, 광호가 노름판을 전전하면서 지낼 때 작부가 마음을 졸였던 이야기들을 하면서 은밀한 이야기들을 했다.

광호는 지폐다발 하나를 꺼내서 작부에게 주었다. 이게 마지막으로 너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말을 하면서 돈을 건네주었다. 술을 마시던 도중에 주는 것은 앞으로 어떻게 벌러질지 모르는 우연성에 대비하는 것이다.

광호는 돈을 주고 나서 노래를 한 곡해야 하겠다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술을 많이 마셨지만 취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아마도 너무 긴장하고 있어서인 것 같았다. 작부는 머뭇거리다가 말리지 않았다.

스테이지에는 젊은 가수가 노래를 열창하고 있었다. 홀에는 많은 술꾼들이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술을 마시고 춤을 추고 있어서 매우 소란스럽고 혼란했다. 광호는 살인 사건을 일으키고 그렇게 대범한 행동을 하고 있었지만 오히려 더 안전했다. 그것은 의외성 때문이다.

누구든지 상식적으로 사람을 죽이고 대중들이 많이 있는 곳에 함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변장을 한 것도 그렇다. 의외성이나 우연성에 의해서 발견되거나 그 반대가 될 것이다. 광호는 그래서 모든 것을 운명에 맡기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

김 형사는 그러한 점을 꽤 뚫고 있었다. 광호가 고향에 오면 반드시 동태파악을 위해서 작부 집에 먼저 들릴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작부의 술집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가무행위를 하는 노래방은 요즘 엉망이다. 가정주부들이 매춘을 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어느 사회든지 그러한 것은 있지만 여러 현상들이 그것을 기막히게 한다. 아내의 매춘을 남편들이 알면서 방관한다. 주부가 아이들의 학비마련을 위해서 매춘을 하고, 남편은 그것이 고마워서 동조를 한다는 것이다.

모두가 미쳤다. 매춘이유가 먹고살고 아이들의 교육이라는 것과 수수방관에 놀라게 된다. 단속반원들 역시 그러한 약점을 너무 잘 알아서 업소로부터 금품을 갈취한다. 광호와 다른 점이 없다. 사회에 썩은 일을 광호만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지식인들도 일으키고 평범한 사람들도 아무 죄의식 없이 일으킨다. 다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권력자는 그것을 은폐할 힘이 있어서 빠져나가지만 비권력자는 그대로 노출되어서 처벌을 받는다. ‘라스콜리니꼬프’가 분류한 <비범인>과 <범인>의 차이도 그러하다.

그는 권력이 있는 소수와 권력이 없는 다수의 문제라고 말했다. 광호는 스테이지에 있는 가수가 노래 부르는 것이 어서 끝나기를 바라고 한 쪽 테이블에 앉아서 기다렸다. 작부는 이제 일반고객을 대하듯이 광호를 대했다.

노래가 끝났다. 언제 말해두었는지 사회자가 아주 귀한 손님을 소개하겠다고 하면서 광호를 불렀다. 다만 광호라는 이름 대신에 테이블 번호와 귀공자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광호는 그 말에 정말로 웃긴다는 생각을 했다.

살인자를 보고 귀공자라니, 그것은 정말로 의외성이다. 귀공자, 그게 무슨 말인지 헷갈린다는 생각을 하면서 다시 피식 웃었다. 작부의 기지에 놀라워하며 역시 장사꾼이라는 생각을 했다.

갑자기 귀공자가 된 광호는 무대 위로 올라가서 몇 곡의 노래를 신나게 불렀다. 정말로 대범한 행동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생각도 못하는 의외성이다. 작부가 마음만 먹으면 신고를 할 것이다. 하지만 광호는 절대로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이유는 그렇게 하면 자기의 술집은 쑥대밭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광호가 얼마간 스테이지에서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갑자기 소란해 졌다. 단속 반원들이 술집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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