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접-3
영접-3
  • 조성연
  • 승인 2006.09.06 07: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광호는 동네 고샅길을 한 바퀴를 돌은 후에 올빼미처럼 공동묘지로 갔었다. 죽은 선생님과 같이 누워 있던 자리로 갔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둥근 바위는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바위에 걸터앉아 소주병을 땄다. 벌꺽거리는 소리를 내며 마셨다.

설움이 울컥 났다. 무엇 때문인지 눈물이 흘러 내렸다. 말할 수 없는 슬픔이 가슴을 아프게 했다. 여명 속에 아직 녹지 않은 눈이 반사되어 사방을 훤하게 드러냈다. 홀로 앉아 많은 생각을 했다.

귀신처럼 보이는 비석과 작은 나무들이 회색 그림자를 예전처럼 드리우고 있었다. 그 놈의 부엉이는 지금도 있는지 우는소리를 내지 않았다. 멀리 있는 광산과 ‘면산’도 가까운 모습으로 드러나 보였다. 소주병에 남은 술을 한 모금 마셨다. 악어와 악어의 부인, 선생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제 용서해 주겠다고 했다. 광호는 용서받을 수 없다고 말하며 울었다. ‘저는 용서받아서는 안 됩니다.’ 살인자가 어떻게 용서를 받을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선생님은 웃으며 ‘광호야 이제 너를 용서할 수 있다. 모든 것을 잊고 다시 출발하라는’ 말을 했다.

광호는 흐느껴 울면서 새로운 생각을 처음으로 많이 했다. 산다는 것은 별것이 아니며 이슬과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항상 젊은 시절이 있는 것이 아니다. 세월은 머물지 않고 지나가고 물처럼 빠르게 지나간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바위에 앉아 멀리 내다보았다.

어둠 속에 서있는 학교가 유령처럼 보였다. 정말로 못하는 것이 없었다. 썰매도 잘 만들었다. 하지만 아무 소용없는 일이었다. 산으로 들로 뛰어 놀며 행복했던 날들이 있었다. 물새알을 내리던 시절과 아버지와 딸기를 따먹은 일, 모두가 과거이고 현재는 아무 것도 없었다.

숫돌을 캐던 가파른 고개와 공동묘지에 풀꽃들은 시들어 버렸고 지금은 눈 속에서 잠들고 있다. 꽃들도 화려하게 피지만 잠시일 뿐 시들어 버린다는 이치를 새삼 느꼈다. 예전에 왜 그것을 몰랐는지를 통곡했다.

숫돌고개를 지나갈 때 일하는 사람들을 어린 시절에 보았었다. 숫돌을 캐내어 팔던 사람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궁금했다. 옛날의 모습은 아니지만 숫돌고개는 그대로 보였다.

사람을 죽이고도 멀리 가지 못하는 이유를 자기도 이해하지 못 했다. 어머니가 그리워서인지, 고향이 그리워서인지, 아니면 인연의 끈이 남아서인지, 멀리 떠나지 못하고 공동묘지에서 옛날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갑자기 철학자 같은 생각을 했다. 인생은 무엇이며, 무엇 때문에 태어나, 무엇을 하다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된 인생을 살았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 것도 할 것이 없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은 처음부터 내 것이 없었다. 그런데 욕심을 냈다. 그것이 잘못된 것이었다. 원래 인간의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절대자의 것일 뿐이다. 무엇을 망설이느냐는 말씀을 했다. 광호는 엎드렸다.

그리고 믿지 않는 절대자를 입에서 찾았다. 이상한 변화가 왔다.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합니까?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합니까, 이제 갈 곳과 할 일을 주십시오.” 성자 같은 말을 했다. 이제서야 할 일을 달라는 말을 했다. 땀 흘려 일해 본 경험이 없다. 일하지 않고 살았다. 그런데 일을 하겠다는 말을 한 것은 대단한 변화다. 변화는 아무에게나 있지 않다.

어머니의 열성이 아들의 변화를 가져왔다. 아들이 아무리 절대자를 부정했어도 그의 가슴속에는 어머니의 뜻이 잠재하고 있었다. 평생을 나쁜 일만하고 살아온 것을 용서해 달라고 했다. 그리고 모든 것을 후회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해 보지 못했다. 그래서 작부를 거짓 사랑한 것도 후회했다. 남을 원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체험했다. 하찮은 미물도 죽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하물며 사람을 죽였으니 용서받을 수 없음을 알았다. 광호는 울부짖으며 어머니를 불렀다. 우는소리가 밤공기를 타고 멀리 퍼지며 귀신 소리를 냈다.

어머니는 대답했다. 이 세상에는 죄 없는 자는 없다. 회개하고 사함을 받으면 된다. 자수를 하라는 말을 했다. 죄를 짓지 않고 사는 사람은 한 사람뿐이며 누구에게나 사악함이 있다는 말을 했다. 그러나 자수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공동묘지는 선한 자와 악한 자가 같이 잠들고 있다. 선생님도 그곳에 묻혀 있다. 황소와 선생님, 달빛과 도끼가 어우러져 벌어진 사건이다. 남은 것은 한 가지 길뿐이라는 생각을 했다. 씨앗을 뿌리지 않아서 거둘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광호는 이제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고 싶었다. 무거운 짐을 벗고 쉬고 싶었다. 더 이상의 죄를 짓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가 잠들고 있는 동산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아버지와 같이 잠들고 싶었다.

어머니를 보고 싶었지만 아무 생각도 하기 싫었다. 광호는 아버지의 산소를 안고 잠들었다. 손에는 작은 약병을 쥐고 있었다. 꿩을 잡을 때 쓰던 ‘사이나’를 먹었다. 별이 된 아들은 그렇게 인생을 마감했다.

어머니의 소원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 같았으나 그렇지 않았다. 아들은 영원한 이별을 하면서 아버지처럼 절대자를 인정하고 잠들었다. 어머니는 묘지로 닦아가며 아들을 불렀다. 그러나 아들은 대답이 없었다.

잠자는 광호의 모습은 너무도 행복해 보였다. 어머니는 아들을 안고 울었다. 눈물을 펑펑 쏟아 내며 아들을 불렀다.
“아들아, 어디에 있니? 네가 간 곳이 어디니, 그래, 거기에 있니?”
“이제 행복하거라, 모든 것을 버리고 편안하게 잠들 거라,”
어머니는 잠들은 아들을 부둥켜안고 통곡했다.

말없는 아들에게 어디로 갔는지를 수도 없이 불렀다. 멀리서 들여오는 광산의 방아소리와 교회 종소리가 조화를 이루며 은은하게 들려 왔다. 어머니의 통곡소리도 함께 메아리치며 멀리 퍼져 나갔다. 그러나 아들은 아무소리도 듣지 못하고 행복하게 잠들고 있었다.

(다음에 계속)
핫이슈포토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노원구 동일로174길 7, 101호(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617-18 천호빌딩 101호)
  • 대표전화 : 02-978-4001
  • 팩스 : 02-978-830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성재영
  • 법인명 : 주식회사 뉴스타운
  • 제호 : 뉴스타운
  • 정기간행물 · 등록번호 : 서울 아 10 호
  • 등록일 : 2005-08-08(창간일:2000-01-10)
  • 발행일 : 2000-01-10
  • 발행인/편집인 : 손상윤
  • 뉴스타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0 뉴스타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towncop@hanmail.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