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아랍의 봄’과 당시 경제
10년 전 ‘아랍의 봄’과 당시 경제
  • 김상욱 대기자
  • 승인 2020.12.18 10: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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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엔 일, 자유, 국가 존엄성을 외쳤다. 이제 튀니지인의 꿈은 가스통이다. 그의 아이들을 위한 빵 한 조각도 여유롭지 못하다. 민주주의, 경제적 여유, 자유 등을 상징했던 아랍의 봄은 이제 ‘그림의 떡(pie in the sky)’ 정도나 될까? (사진 : 위키피디아)
2010년엔 일, 자유, 국가 존엄성을 외쳤다. 이제 튀니지인의 꿈은 가스통이다. 그의 아이들을 위한 빵 한 조각도 여유롭지 못하다. 민주주의, 경제적 여유, 자유 등을 상징했던 아랍의 봄은 이제 ‘그림의 떡(pie in the sky)’ 정도나 될까? (사진 : 위키피디아)

지금으로부터 꼭 10년 전인 201012월 중순 튀니지 내륙도시 시디 부지드(Sidi Bouzid)에서 반정부 시위가 시작되었을 때, 자카리아 함디(Zakaria Hamdi )는 자기가 그 시위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당시 20대 중반에 대학을 졸업했던 함디는 국가 보안군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시위대를 거리로 내몰았던 허탈감과 분노가 혼재되어 있음을 느꼈을 것이다.

함디는 알 자지라 방송에 시디 부지드에 사는 내 또래의 90%가 같은 상황에 처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대학에 갔었지만, 카페에 앉아 커피나 담배 값을 내지 못하고 있는 우리 자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국가는 우리를 기생충으로 보았다고 말했다고 알 자지라는 전했다.

시디 부지드의 시위는 마을 관리들이 그의 농산물을 압수하자 1217일 젊은 노점상인 모하메드 부아지지(Mohammed Bouazizi)가 그 일을 폭로함으로써 촉발됐다.

부아지지는 몇 주 후에 부상으로 사망했지만, 전국의 시위자들이 부패, 경제적 불평등, 실업에 대항하고 정권의 몰락을 요구하면서, 자신을 불태우도록 만든 절망감이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함디는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더 나은 전망과 더 많은 희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았다면서 부아지지가 본 것도 바로 그것이다. 그는 우리처럼 가족을 부양하고 싶어 하는 젊은 사람이었다. 대신, 그는 경찰이 그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그는 절망에 빠져서 스스로 불을 질렀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고 알 자지라는 전했다.

대중의 분노가 급증하는 가운데, 지네 엘 아비딘 벤 알리(Zine El Abidine Ben Ali) 대통령은 1월에 사임해야 했다. 아랍의 봄(Arab Spring)으로 알려진 이집트, 시리아, 예멘, 리비아를 포함한 이 지역 전역의 다른 나라들에서도 폭동이 일어났다.

그 지역 전체에 걸친 대중의 반정부적 반발은 주로 부패, 경제난, 불평등, 그리고 국가의 경제정책으로 인한 높은 실업률에 대한 거부였다.

*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

튀니지에서 다른 주로 시위운동이 급속히 확산되면서 관측통들은 깜짝 놀랐다. 특히 국제 경제학자들과 기관들 사이에서는 정치적 격변 직전에 있는 많은 나라들에 안정감이 존재했다는 인식이 있었다. 튀니지는 안정적인 경제, 연평균 5%GDP 성장, 그리고 고학력 인구로 여겨졌다.

이집트에 불평등이 있다는 것에는 거의 의심의 여지가 없었지만, 소득 불평등을 측정할 수 있는 지니계수는 200036.1%에서 200930.7%로 감소했다.

튀니지의 정치 분석가인 모하메드-디아 함마미(Mohamed-Dhia Hammami)에 따르면, 튀니지의 경제 수치는 현실과 일치하지 않았다. “혁명 후 실시된 재평가에서 벤 알리 하의 빈곤 수준은 20% 이상 저평가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함마미는 지적했다.

튀니지 정권이 붕괴되기 며칠 전 시위자들과 함께 세계은행은 튀니지가 이 지역의 다른 나라들에게 본보기가 될 것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가장 정통해 보이는 사람들, 주로 해안에 기반을 둔 엘리트들은 이 보고서들을 믿었고, 모든 것이 잘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했고, 시장 자유화는 효과가 있었다.

벤 알리의 집권 20년 동안 200개 이상의 국영기업이 민영화되었고, 하비브 부르기바(Habib Bourguiba) 전 대통령 시절 유행했던 복지정책은 약화됐다.

알 자지라는 튀니지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많은 튀니지인들이 매력적이지 않은 불안정한 일자리가 널리 퍼진 주요 원인으로 간주하고 있는 함마미는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 심지어 유럽연합으로부터도 이러한 정책들이 고무되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그들은 종종 낮은 기술을 가진 직업이었고, 고도의 기술을 가진 사람들의 수는 증가하고 있었다. 이는 두뇌 유출로 이어졌고, 더 숙련된 사람들이 떠나고, 뒤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변화를 요구하기 위해 거리로 나갔다고 말했다.

전 세계 평균 15% 미만이었던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청년 실업률은 2008년에 거의 25%에 달했다. 대학 교육을 마친 젊은이들 사이에서 실업률이 더 높았다. 지역 전체에 걸쳐 크고 성장하는 젊은이들은 자신과 가족을 부양할 직업을 만들 실제적인 전망이 거의 없었다.

브루킹스 도하 센터의 연구 책임자인 네이더 카바니(Nader Kabbani)는 신자유주의적 개혁이 시행되는 방식을 비난했는데, 그는 이것이 많은 아랍 국가에서 후원 네트워크와 친애하는 자본가들의 권한을 강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고 지적했다.

결국 자유시장경제가 아니라, 후원자에게 보상을 해주고 성장을 허락받지 못하는 비뚤어진 경제로 귀결되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경제들은 필요한 수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없었다고 카바니는 알 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카바니는 이어 사람들은 매우 열심히 일하고 있었지만, 그들이 많이 진보하고 있다고 느끼지 못했다, 그와 동시에,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돈을 많이 버는 것을 보았다고 전했다. 사람들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의 이런 새로운 장벽을 보지 못했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변화한 것은 전혀 없어 보인다.

* 지역적인 문제

아랍의 봄 시위를 본 나라마다 고유한 국내 환경이 있고, 그 지역을 하나의 획일적인 실체로 보아서는 안 되지만,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엘리트들은 더 부유해지고 있다는 주제는 친숙한 것이었다.

이 지역의 최빈국 중 하나인 예멘에서 2007년 히라크 시위(Hirak protests)는 결국 분리주의 운동으로 변질되었고, 알리 압둘라 살레(Ali Abdullah Saleh) 전 대통령의 후원 네트워크에서 제외되면 생계를 유지할 수 없었던 퇴역 군 장교들의 고군분투 결과였다.

이집트에서는 전 대통령 호스니 무바라크(Hosni Mubarak)가 그의 아들 가말(Gamal)의 미래 지도자 역할에 더 몰두했던 2007년과 2011년 사이에 식량 가격이 두 배로 뛰어 올랐다. 그러나, 아랍의 봄 이후 10년이 지난 지금 폭동을 일으켰던 많은 사회경제적 상황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리비아, 시리아, 예멘은 끔찍한 전쟁을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는 중이다.

이집트에서 민주주의는 번성하지 못했고, 인권단체들은 인권위기를 경고해왔다. 튀니지는 종종 민주적인 권력 이양과 언론의 자유 증대로 하나의 밝은 이야기로 여겨진다. 그러나 튀니지 사람들은 그들의 지도자들에게 투표할 수 있지만, 봉기를 이끈 경제적 어려움은 여전히 그대로 남아있다.

여전히 같은 마을에 살고 있다는 함디는 혁명이 일어나기 전에 시디 부지드로 가서 지금 돌아온다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라면서 실업률이 증가했다. 정치인들은 우리에게 인내심을 가지라고 말하지만, 사람들은 얼마나 오래 참을 수 있을까?”라고 묻는다.

2010년엔 일, 자유, 국가 존엄성을 외쳤다. 이제 튀니지인의 꿈은 가스통이다. 그의 아이들을 위한 빵 한 조각도 여유롭지 못하다. 민주주의, 경제적 여유, 자유 등을 상징했던 아랍의 봄은 이제 그림의 떡(pie in the sky)’ 정도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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