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 좌청룡 우백호
이중 좌청룡 우백호
  • 안봉규 논설위원
  • 승인 2008.01.06 05:4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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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우리나라가 굳어진 허물 벗는 시기

 
   
  ^^^▲ 고구려 벽화(청룡과 백호)^^^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 요한복음 3장 7절에서 -

초등학교 1학년 수학책에 유물론(唯物論)이 나타나있다. 예를 들어, “1+1=2”의 풀이과정은 대개 사과 같은 그림으로 유도한다. 이 덧셈은 오직(唯) 물체(物)만 있을 뿐이고, 아동의 머리는 “합치면 몇 개다” 하는데(論)에 집중된다. 교과서의 그림은 다양한 변화를 주기 위하여 과일 대신 동물도 나오고, 때로는 사람도 나온다.

그런데 사람의 경우가 문제이다. 정답을 찾아내는 어린이에게 사람의 개성이나 관계는 무시되고 오직 단순하게 개수로 처리된다.

만약 국민들의 자유와 인권을 무시하는 사회주의 국가가 있다면, 이는 초등학교 1학년 수학책 수준의 유물론을 펼치는 나라로서 평가할 만하다.

우리는 권력지향형 유물론자 무리를 좌파세력이라 부르는데, 그런 좌파세력 중에 일부 “친북 좌파”가 이런 취향을 보인다. 그들은 그동안 북에 맹종하는 열정을 보여 왔다. 자신을 순교자 같은 혁명가로 자임할는지 모르나, 그 속을 뒤집어 보면 왠지 무표정한 물체로 자폭한 상황처럼 보인다. 인격파탄이랄까.

20세기는 유물론을 이념으로 삼았던 공산국가가 지상에 창궐했다가 소멸되었던 시대로 특징지을 수 있다. 그 실패한 근본적 이유는 인간에 대한 잘못된 해석에 있었다. 그들은 사람을 독립된 개인으로 보다는 덧셈이 가능한 군중의 한 요소로 보았다. 그래서 좌파는 같은 색끼리 줄지어 더하고, 비슷한 색이면 옆줄로 끌어들여 곱하면서 먼저 덩치를 키운다. 그리고 공통된 목표로 날 세워 집체 파워를 높인다. 전체가 한 생명체처럼 운동한다.

그러나 사람마다 하나의 인격체로서 고유성을 가지고 있음을 결코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 한 사람이 차지하는 시공(時空)을 살펴보면, 몸은 개체로서 부분이지만 마음은 온 우주를 덮는 전체인 것이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죽음으로 이끌어가는 이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로마서 7:24)” 사도 바울의 이와 같은 고백은 부분이며 전체가 되는 역설적인 인간상황을 나타내고 있다. 한 사람에게 주어진 현실은 언제나 불확정적이다.

사람의 정신세계는 덧셈으로 풀 수 없다. 왕사였던 무학(無學) 대사는 “모르쇠”로 유명하다. 하루는 제자들에게 머지않아 세상을 떠날 것이라 일렀다.

한 제자가 “죽으면 어디로 갑니까?” 무학 “모르겠다.” 제자가 또 “스님의 병은 누가 만들어 낸 것입니까?” 무학은 또 손을 가로 저으며 “모른다.” 제자가 다시 “육신은 없어지는데 진법신(眞法身)은 어디서 생긴 것입니까?” 무학은 그때 두 팔을 뻗으며 “바로 이것이다.” 그러면서 이내 입적하였다 한다.

수도 서울은 600년을 넘긴 옛 도읍이다. 잘 알려지다시피, 서울은 풍수의 명당자리로서 무학이 태조에게 잡아준 곳이다. 도봉산(716m)을 조산(祖山)으로 남쪽으로 내려오다 북한산을 종산(宗山)으로 자리 잡는다. 북한산은 우뚝 솟은 세 봉우리 인수봉(811m), 백운대(837m), 만경대(799m)가 어울려있기에 예로부터 삼각산이라 불렀다. 여기서 다시 남쪽으로 뻗어내려 북악산(342m)을 주산(主山)으로 삼고, 그 아래 터전이 혈(穴)로서 경복궁이 세워졌다.

주산 북악산에서 동쪽으로 이어진 낙산(125m) 줄기가 내청룡이며, 서쪽으로 이어진 인왕산(338m) 줄기가 내백호이다. 남산(262m)이 안산(案山)으로 앞을 가려준다. 이 4개의 산 안쪽에 사대문(四大門)으로 연결된 서울성곽이 둘러쳐져 있다. 또 종산 북한산에서 동쪽으로 내려오다 한강에서 용마산(348m)을 이룬 것이 외청룡이며, 서쪽으로 내려오다 한강에서 덕양산(125m)을 이룬 것이 외백호이다. 한강 넘어 관악산(629m)이 조산(朝山)으로 지킨다.

서울은 좌청룡과 우백호가 이중으로 감싸고 있는 셈인데, 21세기 초엽에 우리의 정치지형이 마치 “이중 좌청룡 우백호”의 명당으로 틀이 잡히고 있다. 안쪽으로 극좌-극우, 바깥쪽으로 신좌(New Left)-신우(New Right), 이것이 소위 “잃어버린 10년”에서 캐어낸 의미이다.

이쯤에서 “친북”이 좌파만의 전유물이 아님을 밝히자. 친북경향은 좌우의 이념을 떠나서 온 국민적 정서이다. 따라서 친북 좌파는 “친김(정일) 좌파”로 범위를 좁히든지, 복종한다는 의미로 “종김 좌파”로 고쳐야 한다. 이들이 극좌(Extreme Left)이다.

2002년의 제16대 대선은 대한민국이 극좌만의 잔치로 기대될 만큼 고무적이었다. 그늘에 가려있던 그들은 당당하게 청와대를 보좌하며 마음껏 햇볕을 쬐었다. 그렇지만, 2007년의 제17대 대선 민심은 극좌가 거의 몰락하는 수치로 나타났다. 그동안 이른바 뉴레프트라는 “시민 좌파”도 나타났지만, “종김 좌파”는 어딘가 촌스러웠다. 그렇다고 그 “촌놈 좌파”가 반드시 타파되어야할 대상만은 아니다. 독(毒)이 너무 세면 위험하지만, 잘 쓰면 약이 된다.

서인과 남인은 17세기 때 좌우로 나뉘었다. 우암(尤庵) 송시열과 미수(眉叟) 허목은 각각 서인과 남인의 수장으로 두 차례의 예송(禮訟) 문제를 가지고 각을 세우고 있을 때였다. 그 즈음에 백약이 무효일 정도로 사경을 헤매던 우암이 미수의 처방으로 살아났다는 설화는 아름답다. 그 처방전에 비상(砒霜)이 다량 포함됐으나, 인간 미수를 믿었던 우암은 그 독약을 독으로 보지 않고 약으로 받아드렸던 것이다. 독을 잘 다스리면 체질이 강화된다.

등뼈가 없는 동물들은 대체로 딱딱한 껍질을 갖는다. 그런데 더욱 성장하고자하면 이전에 자기의 보호막이던 견고한 외피를 벗어버려야 하는데, 이것을 허물벗기라고 한다. 만약 이 생체가 탈피를 못하면 외피 자체가 자신의 무덤으로 바뀐다. 한 사람의 인격이나 사회단체의 체제 역시 견갑류와 닮은 데가 있다. 어떠한 논리든지 영구히 완전할 수는 없다. 우파든 좌파든 장기집권하면 반드시 체제가 굳어진다. 그리고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좌우를 떠나 선동가의 언어는 언제나 선명하다. “1+1=2”, 이런 식이다. 단순해야 파워가 강해지고, 간결해야 동원이 쉬워진다. 저들에겐 불변의 진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다수가 따라주는 것이 진리이다. 민중을 선동하기 위해서라면 거짓도 조작한다. 필요하다면 욕까지 거리끼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도 사회도 적당한 시기에 허물벗기를 거듭해야 한다.

2008년도는 우리나라가 탈피할 시기를 맞이했다. 왜냐하면, “1+1=?”는 2만이 절대 진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때로는 0(전기), 1(집합), 1+1(복소수), 다가(화학) 등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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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2008-01-20 16:10:12
모르쇠, 허물,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내내건강하십시요.